범죄학 개정판(전대양, 김종오, 신현주)

범죄학 사례 18 미군장갑차 여중생 압사 사건

도서출판 윤성사 2026. 2. 16.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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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학(개정판 전대양, 김종오, 신현주)의 유명범죄사례

 

18. 미군장갑차 여중생 압사 사건

 

1. 사건개요

이 사건은 2002613, 당시 조양중학교 2학년 신효순, 심미선 양이 양주시 광적면 효촌리 소재 56번 지방도에서 갓길을 걷다 주한 미군 미 보병 2사단 대대 전투력 훈련을 위해 이동 중이던 부교 운반용 장갑차에 깔려 현장에서 숨진 사건이다.

 

2. 발생원인

미군 측은 614일 저녁 사고 현장에서 유족을 상대로 일방적인 브리핑을 진행한 데 이어 619일 미2사단에서 한미 합동조사 결과를 공식 발표했다. 미군측은 이번 사고는 결코 고의적이거나 악의적인 것이 아닌 비극적인 사고임을 강조하며 사고 원인으로 차량 구조상 오른쪽 시야에 사각지대가 있어 운전병이 학생들을 발견할 수 없었고, 관제병이 커브를 돌아 약 30m 전방에서 학생들을 발견하고 운전병에게 경고하려 했지만 소음과 타 무전교신 등에 의한 통신장애로 제때에 경고가 전달되지 못해 발생한 우발적인 사고라고 주장했다. 또한 당시 차량은 시속 8~16의 속도로 중앙선을 넘지 않고 계속 직진 운행 중이었으며, 마주오던 장갑차는 서로 교행하지 않고 사고차량과 1m 떨어진 지점에서 정차했다고 밝혀 그동안 유족들이 제기해온 사고차량이 마주오던 장갑차와 교행하면서 갑자기 우측 갓길로 틀었을 가능성에 대해 전면 부인했다.

하지만 이 발표는 설사 차량 구조상 시야가 제한되더라도 운전병의 고개 방향에 따라 그만큼 시야가 확보될 수 있는 점, 통신장애란 통신장비 고장이거나 헬멧을 착용하지 않은 이상 발생하기 어렵다는 점, 궤도 차량의 경우 마찰계수가 커서 시속 8~16km의 느린 속도로 운행한다면 제동장치 작동 시 보통 그 자리에서 정지하게 되는 데 어떻게 피해 학생 두 명이 일렬로 누워 두개골이 으깨질 정도로 완전히 밟고 지나갈 수 있는지, 우측 갓길 주변의 아스콘이 깨지고 풀이 눌린 흔적은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는 지 등에 대한 의문점을 남겼다. 거기에다 628일 미2사단 공보실장이 한 라디오 프로에서 그 누구도 책임질 만한 과실이 없다라고 말하여 비난 여론은 급속히 확산되었다.

 

3. 사건내용

. 사건일시

2002613일 오전 1045분경

 

. 관련 인물과 사건 전개

1) 관련 인물

피해자 - 신효순(14, 조양중 2), 심미선(14, 조양중 2)

가해자 - 워커 마크 병장(운전병), 페르난도 니노 병장(관제병)

 

2) 사건 전개

사태가 점차 심상치 않게 발전할 낌새를 보이자 미군 당국은 73일 운전병과 관제병을 과실치사죄로 미 군사법원에 기소하는 한편, 라포트 주한 미군사령관의 사과를 전했다. 그와 별도로 한국 검찰도 관련 미군에 대해 자체조사를 벌이기로 했다. 이는 유족들이 628일 차량 운전병과 관제병, 2사단장 등 미군 책임자 6명을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의정부 지청에 고소하고, 미군 측의 재판권 포기를 요청한데 따른 것이다. 하지만 미군 측은 신변위협을 이유로 검찰의 소환조사에도 제대로 응하지 않았다. 법무부는 710일 사상 처음으로 미군 측에 재판권포기요청서를 보냈다. 그러나 87일 미군 당국은 동 사고가 공무 중에 일어난 사고이고, 이제껏 미국이 제1차적 재판권을 포기한 전례가 없다라는 이유를 들어 재판권 포기를 거부했다.

이후 1118일부터 23일까지 동두천 미2사단 내 군사법정에서 열린 군사재판에서 배심원단은 기소된 미군 2명에게 무죄평결을 내렸다. 배심원단은 모두 미국 현역군인들로 구성되었는데 배심원들과 피고인이 직업적 동질성과 공감대를 가진 사람들로 구성되는 재판은 미국식 사법제도의 기준에 비추어 매우 의례적인 것이었다. 이들 미군은 무죄평결 5일 후인 1127일 짤막한 사죄성명을 발표한 뒤 한국을 떠났다.

 

. 의의와 파장

이 사건이 널리 알려지게 되자 미군 규탄 여론이 급속히 확산되었다. 미군장갑차여중생사망사건범국민대책위원회가 결성되어 시위를 주도하였다. 이 위원회는 이번 사건을 최소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행위라 규정하며 미군 측을 압박했다. 1120일 페르난도 니도 무죄평결, 1122일 마크 워커 무죄평결이 보도되자 이에 분노한 시민들이 모여 연일 미군규탄대회를 열었다. 1126일에는 서울 시내 중심가에서 촛불집회가 열렸는데, 이는 6월 항쟁 이후 최대 규모의 전 국민적 저항이었다. 이와 함께 전국 주요도시에서는 많은 시민사회단체(녹색연합,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참여연대 평화 네트워크,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여성의 전화연합, 환경운동연합 등)가 시국회의를 개최하고 투쟁방향을 논의하였다.

126일에는 서울에서만도 3만여 명이 참여한 촛불집회가 열렸고, 1214일에는 부산에서 집회가 열려 미군 하이야리어 캠프(Camp Hialeah) 후문까지 시위대에 의해 파괴되었다.

한편, 미군 당국는 1127일 주한 미대사 토마스 허버드를 통해 부시 대통령의 간접적인 사과를 전하고, 1213일에도 부시 대통령이 김대중 대통령과 전화통화에서 다시 한 번 유감의 뜻을 전했다. 이 사건 이후로 한미행정협정(SOFA)개정논의가 있었지만 별다른 진전은 없었고, 미국에 대한 적대감정만 높아져 갔다.

 

4. 참고자료

 

위키백과(2008). 미군 장갑차 여중생 압사 사건. http://ko.wikipedia.org/wiki/

용어사전(2008). 주한미군 장갑차에 의한 여중생 사망 사건. http://terms.naver.com/

연합뉴스(2006). 미장갑차 여중생 사망 수사기록 공개 타당. http://news.naver.com/main/read

오마이뉴스(20021118).

오마이뉴스(20021126).

오마이뉴스(2002123).

국민일보(2002722).

한겨레, 조선, 동아, 경향, 중앙일보의 관련기사 등 다수.

 

5. 집필자

전대양(관동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